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A 저는 반려견 ‘빌리’와 함께 살면서 카페 시모어를 운영하고 있는 박선희라고 합니다. Q 바리스타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A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카페에서 일하면 음악을 들으면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일을 처음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점점 재미를 느껴서 졸업할 때까지 쭉 일했고요. 20대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개인적으로 큰 슬픔을 느꼈는데, 그런 시기에도 카페에서 일할 때는 슬픔은 잠시 잊고 즐거움을 느끼는 저를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 진지하게 ‘바리스타를 내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겠다'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후에도 커피와 또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쭉 이어져서 ‘시모어'라는 공간까지 운영하게 됐어요. Q 이제 시모어를 운영하신 지도 1년 정도 되셨잖아요. 처음 준비하실 때는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A 막연하게 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조금씩 했었어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늘 제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스크랩해 왔고요. 그러다가 오래 다니던 카페를 그만두고 1년 정도 쉬면서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마음을 먹고 ‘내 공간을 만들어봐야지!’ 하고 찾아봤는데, 그땐 마음에 드는 곳이 정말 한 곳도 없더라고요 (웃음).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실망도 하고, 아직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어요.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을 때 지금의 ‘시모어' 자리가 나온 거예요, 정말 운명처럼. 이후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모든 게 흘러갔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웃음). Q ‘시모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어요? A 개인적으로 의미부여 하는 걸 좋아해요 하하. 시모어라는 이름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말 그대로 더 보는 것(SEE MORE)이에요. 좋아하는 걸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는 의미가 있어요. 두 번째로는, 제가 좋아하는 제롬 데이비드 셀린져라는 작가의 단편 소설 속에 ‘세이모어 글라스’라는 등장인물에서 따왔어요. 뭔가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헤쳐 나가는 그런 인물이거든요. 삶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있는 시모어의 모습을 닮고 싶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라는 배우를 너무 좋아해서예요(웃음). Q 오랜 시간 동안 바리스타로서 살아가고 계시는데, 대표님에서 커피란 어떤 것일까요?A 저에게 커피는 ‘위로’ 같아요.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상대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또 위로받기도 하고요. 요즘 기술적으로 훌륭한 커피들도 정말 많은데, 저는 커피가 가진 따뜻함과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다정한 마음을 담아 커피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시모어의 원두는 제가 7년 가까이 단골로 지내고 있는 ‘콩밭커피로스터’에서 만들어주신 시모어블렌드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 콩밭 커피의 인스타그램에 적힌 문구로 저에게 커피란 어떤 것인지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커피의 맛이 너무나 다정하여, 커피잔 안에서 인간의 얼굴을 보았다.” Q 시모어에서 한잔의 커피만 마실 수 있다면 어떤 커피를 권하고 싶으세요?A 메뉴가 많지 않아서 다 추천해 드리고 싶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시모어의 시그니처 메뉴인 ‘블랙 크림’을 권할 것 같아요. 시그니처 메뉴가 있어야 한다는 주변 친구들의 조언으로 만들게 된 메뉴인데, 사실 그전에는 크림이 올라간 커피를 많이 다뤄본 적이 없어서 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 크림이 올라가는 메뉴인데, 크림이 얼그레이 크림인 것이 포인트이에요(웃음). 그래서 느끼하지 않고 커피의 산미와 크림의 단맛이 어우러져 조화롭게 마실 수 있는 커피예요. Q 시모어에 올 때마다 음악이 참 좋아요. 이 공간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는 음악 선곡을 하시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궁금해요! A 손님분들이 커피 맛있다고 칭찬해주시는 것도 너무 좋은데, 음악 좋다는 얘기도 너무 좋아요 (웃음). 언젠가 내 공간이 생기면 이런 음악을 틀어야지 생각하면서 음악 리스트를 많이 만들어 놨었거든요. 봄여름 가을 겨울, 비 오는 날, 밝은 날 이런 식으로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들로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던 걸 요즘 잘 써먹고 있어요. 또, 어떤 때는 손님이 오시면 그 손님의 분위기에 맞춰서 노래를 바꿔보기도 해요.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너무 많아서 한 명을 꼭 꼽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꼭 한 사람을 꼽아야 한다면 조니 미첼이요. 많은 인생의 우여곡절이 속에서 결국에는 아름다움을 노래하잖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에 많이 녹여내는 가수로도 유명한데, 노랫말이 너무나 아름답고 모든 노랫말이 시 같아요. 그중에서도 BOTH SIDES NOW라는 곡을 제일 좋아하는데, “사랑은 정말 모르겠어, 인생은 정말 모르겠어“ 라는 가사가 반복돼서 나오는데, 점점 나이 들어가는 조니 미첼의 목소리로 그 가사를 들으면, 그게 또 참 좋더라고요. Q 시모어에는 한 명의 사장님이 더 계시잖아요. 바로 빌리 사장님! 빌리 사장님과 인연도 특별하다고 들었어요. 빌리 사장님과의 인연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A 빌리는 남해에 있는 열악한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앞두고 있던 아기 강아지였어요. 임시 보호를 하는 주변 친구들도 있었고 워낙 강아지를 좋아하다 보니까 입양이나 임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의 소식을 자주 접하고 관심 있게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수많은 아이 중에 빌리가 유독 눈에 띄었어요. 그 영상 속 빌리는 겁에 질려서 벽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그저 '하룻밤이라도 편하게 있게 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전부였던 것 같아요. 저도 이런 마음이 생겼다는 것에 좀 놀랐었어요. 처음부터 입양하려고 데려온 건 아니었고, 임시 보호를 해서 안락사에서 벗어나게 해주자 해서 데려왔어요. 보호소에 전염병이 돌아서 같이 들어왔던 형제들은 다 죽고 빌리 혼자 살아남았다고 들었어요. 아마 사람에게 학대도 받았던 것 같고요. 저를 만나기 전 빌리에게는 충격적이고 힘들었던 시간뿐이었을 거예요. 저희집으로 오고 나서 거의 한 달 동안은 화장실에서 거의 나오지도 않고 만지지도 못했어요. 시간이 오래 걸렸죠.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는 과정을 통해서 빌리와 제가 정말 좋은 친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겨우 나에게 맘을 열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내겠나 싶어서 입양까지 결심하게 됐어요. Q 빌리로 인해서 일상생활에 변화도 조금 있을 것 같아요.A 출근하기 전 아침에 매일 빌리와 산책하는 게 제 루틴이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하러 나가요. 빌리를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을 많이 느껴요(웃음). 힘들지 않냐고 주변에서들 물어보시는데, 빌리가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이렇게 비를 흠뻑 맞으면서 사람 없는 공원을 걸어볼까, 새벽의 산속 새소리에 귀 기울여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 루틴이 오히려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아요. 또 매일 산책을 하다 보니까, 계절의 변화를 더 잘 느끼게 돼요. 빌리를 따라다니느라 충분히 즐기진 못하지만요 하하. 예전부터 친구들에게 지프차에 늑대개를 태우고 다니고 싶다고 농담 삼아 얘기하고 다녔었어요. 지금은 작은 미니쿠퍼에 늑대를 닮은 누렁이를 태우고 다니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꿈을 이뤘죠, 빌리 덕분에요! Q 빌리 사장님의 인기와 사장님의 섬세한 배려 때문인지 많은 분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A 가끔 빌리를 데리고 출근할 때, 겁쟁이인 빌리가 혹시 손님을 향해 짖거나 피해를 드리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오시는 손님분들이 빌리를 이해해 주시고 예뻐해 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에요. 저 혼자 출근했던 날 한 손님이 오셔서 강아지랑 함께 와도 되느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그럼요!’ 했는데,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진돗개인데 괜찮으냐고 재차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럼요, 저희 개도 진돗개에요’ 하고 말씀드렸는데 그 손님이 가시고 나서 ‘왜 한 번 더 물어보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진돗개 그리고 큰 개여서 거절당했던 일이 있어서 그랬을까 생각했어요. 공감도 되고 속상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빌리를 닮은 손님들이 찾아오면 내가 더 환영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계기로 견종 관계없이 손님분들이 개들과 편하게 많이 찾아와주시는 것 같아요. Q 시모어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행복했던 순간이 있을까요?A 시모어를 시작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는 작년 빌리 생일이었어요! 빌리 생일이라고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셨거든요.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주신 분도 계셨고요. 빌리는 낯선 사람이 다가오거나 쳐다보는 걸 무서워해요. 모두가 빌리를 보러 왔는데, 막상 빌리가 무서워할까 봐 쳐다보지 않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주셨는데 그 분위기에서 빌리를 아끼고 예뻐해 주시는 따뜻한 마음이 다 전해지는 거예요. 그 마음을 빌리도 알았는지 행복하고 또 편안하게 시모어에서 생일을 보낸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살짝 울컥했어요, 뒤돌아서 설거지하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Q 시모어에 오는 손님들에게 시모어가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으실까요?A 예전에 친구를 따라가서 사주를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이 저에게 '길 잃은 자들을 위한 쉼터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말이 맞는지 틀린 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었어요. 최근에 ‘노매드랜드'라는 영화를 봤는데, 트럭을 타고 정처 없이 다니는 사람들이 저녁때 함께 둘러앉아서 캠프파이어를 하는 장면을 봤는데 그게 약간 시모어의 테이블 같다고 생각했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지만 함께 둘러 앉아있는 모습이 참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시모어에 오시는 손님분들도 혼자 오건 친구와 함께건 편하게 둘러앉아서 제가 받은 그 따뜻한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또, 복잡한 거 있으면 정리가 되는 느낌을 받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Q 앞으로 시모어가 꿈꾸는 앞으로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A 사실 저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행복한데, 언젠가 빌리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자연 가까운 곳에서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시모어 2호점이 될 수도 있고 아예 다른 공간이 될 수도 있고요.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함께할 동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마음 맞는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Q 대표님에게 완벽한 일요일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A 빌리와 아침 산책, 커피와 빵 그리고 낮잠(웃음). Q 마지막으로 선희님이 바라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A 천천히 유영하면서 살고 싶어요.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실천해나가는 삶도 멋있지만, 사실 그냥 흘러가 보는 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다만 나의 중심은 잘 지키면서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내가 생각한 비슷한 지점에 닿아있지 않을까 해요. 여유롭고 다정하게 살고 싶어요. 친구들이랑도 ‘우리 너무 애쓰지 말자'라고 장난처럼 이야기를 많이 해요. 내 인생의 장르가 있다면 시트콤이라는 생각하고요, 하루하루 재밌게 살자! 열심히 ‘일희일비'하자!